Date : 7월 28, 2017
나는 서핑 초보자다. 몇 해 전 양양에서 한 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 번 경험한 게 전부다. 그전에 내가 바다에서 한 놀이라고는 수영이 전부인 터라 보드를 타고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일은 나에게 색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두 번의 서핑 경험 후 여유가 없어 바다를 접하지 못했는데 이번 바이챈스 촬영 덕분에 다시 ‘바다 놀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비록 서핑이 아닌 SUP를 통해서지만 바다와 파도, 서퍼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차철호, 김일욱, 이재호는 각각 속초와 고성, 서울을 거점으로 서핑과 등반 활동을 한다. 덕분에 서퍼와 클라이머 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나는 여기서 둘의 중요한 차이점을 알게 됐다. 이날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면 우선 서퍼들은 질 좋은 파도를 찾아 망설임 없이 긴 여정을 떠난다. 누군가의 물질적인 지원 없이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원정에 비용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반면 등반가는 해외 원정을 거창하고 비장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벌이는 원정 등반의 밑바탕에는 즐거움보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훨씬 더 큰데, 이는 원정 실패에 대한 부담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유로 즐거워야 할 원정이 의무감 있는 어떤 ‘숙제’ 같은 것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일부 등반가들은 ‘세계 최초’ ‘신루트 등반’ 등의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뿐만 아니라 명예에 집착하는 부류도 더러 있다고 한다.
서퍼의 입장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파도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원정 서핑의 본질은 즐거움이고, 그 안에는 어떠한 불안과 공포, 성공과 실패에 따른 부담감이 아닌 그야말로 ‘재미’로 꽉 차 있다고. 물론 큰 파도를 타는 것이 목적인 서퍼의 입장은 다를 테지만 근본적으로 위의 등반가들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해외 원정을 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매번 좋은 파도가 오는 것은 아니라서 서퍼들은 기다림에 익숙해요. 기다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순응하고요. 이 사람들은 욕심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에요!”
속초 토박이 차철호 씨는 오랫동안 설악산적십자구조대에서 활동해왔다. 서핑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바다에서 느낀 점이 많은 모양인지 어느새 서핑 예찬론자가 되어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서핑 숍을 운영하고 있는 김일욱 대표는 서핑 덕분에 인생이 바뀐 케이스다.
“6년 전쯤, 한국에서도 서핑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면 얼마나 하겠나?’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죠. 서핑을 하기 전에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제가 보드를 들고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죠. 지금처럼 늘 바다를 보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요.” 김일욱 대표는 고요한 고성 백도해변 풍경에 이끌려 홀로 이곳에 정착했다. 궁극적으로 ‘서핑을 더 많이 즐기고 싶어서’ 새로운 삶을 선택했는데,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지금도 그는 가게가 번창하기보다 바다와 함께 여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서울에서 SUP 강습을 하고 있는 이재호 서프오션 대표 역시 물에서 노는 재미를 알고 난 뒤 10년 넘게 SUP, 윈드서핑, 카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분야의 아웃도어 종목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고받은 이번 대화의 키포인트는 ‘즐거움’이다. 어느 분야의 누가 더 순수한가를 따지기보다 어떤 활동이 자신을 더 자극시키고 흥미로운지에 대한 토론이었다. 바다가 옆에 있기 때문일까? 결론은 ‘서핑’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하늘에는 마침 보름달이 떴다. 은은한 달빛이 바다를 가르는 풍경에 모두 넋을 잃었다. 고성의 옛 이름인 달홀(達忽), 문자 그대로 우리는 달빛에 홀려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