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6월 15, 2016
형은 조카의 다섯 번째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골랐다. 페달 없이 두 발로 땅을 짚고 타는 유아용 자전거다. 형과 조카는 주말이 되면 그것을 가지고 한강으로 가서 연습을 한다. 점차 균형 감각을 익혀 네발자전거에 도전하고 언젠가는 두 바퀴만으로 거뜬히 세상을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퀴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이다. 엄마의 품에서 걸음마를 떼고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우는 것은 현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의식처럼 진행돼왔다. 아이는 학생을 지나 사회인으로서 바퀴의 의미에 대해 깨우치며 살아갈 것이다. 바퀴는 자동차, 비행기, 굴삭기, 탱크, 컨베이어 벨트뿐만 아니라 회사의 책상 다리에도 달려 있다는 것. 바퀴의 수많은 쓰임새 중 으뜸은 여행이고 자전거는 바퀴의 세계에서 가장 순수하고 즐거운 대상이라는 것까지도.
내 인생에서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탄 시기는 4년 전이다. 바퀴의 바깥에서는 야영 장비를 챙기고 여행할 구간의 구글 지도를 인쇄했다. 바퀴의 안쪽에서는 힘을 길러 동력을 얹을 준비를 했다. 우리 일행은 약 한 달 동안 한강 135km, 금강 110km, 영산강 131km, 낙동강 378km를 각각 편도로 여행할 계획이었다. 이 거리는 강변 자전거길의 공식적인 수치고 그때만 해도 도로가 완공되지 않아 무척 자주 우회해야 했으니 실제로는 조금 더 길었다.
낮은 짧고 밤은 길게 찾아왔다. 해가 기울면 강변의 평탄한 야영지를 찾거나 마당이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하룻밤 텐트 칠 자리를 부탁하곤 했다. 영업이 끝난 뒤 식탁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잠자리를 만들거나 갓 지은 따끈한 밥이나 목욕물을 데워주는 호의도 받았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길에서 사나흘씩 땀을 흘렸다. 대퇴근은 나날이 단단해졌다. 자전거 바퀴는 자동차의 그것보다 작고 약하고 빠르지도 않아서 길에 대한 더 세밀한 탐구가 필요하다. 링 위의 복서처럼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쉬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강해지고 통찰력도 좋아졌다. 이때부터 재미를 느낀 나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MTB 대회에도 나갔다. 그러나 중고로 구입한 자전거가 관리가 소홀해 자주 망가지면서 조금씩 흥미를 잃었다. 그마저도 처분하고 지금은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지만 강변을 달리며 바라본 소소한 마을 풍경과 부드러운 바람을 기억한다. 여행용 자전거에 앞뒤로 짐 가방을 달고 멀리 떠나보고 싶은 생각도 여전하다.
내가 갖고 싶은 자전거는 킨텍스에서 열린 스포츠용품 전시회에서 본 코가(KOGA)라는 브랜드의 ‘란도너(Randonneur)’ 모델이다. 투어링 바이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코가의 이 자전거는 장거리 라이딩에 적합한 구동 시스템을 갖췄고 정비가 쉽다. 짐받이, 핸들 바, 안장 등 각각의 액세서리도 장거리 여행에 유용하게 세팅되었다. 무엇보다 MTB처럼 지나치게 강해 보이지 않으면서 로드 바이크보다는 단단해 보이는 디자인. 한동안 란도너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자전거가 없었는데 최근 브롬톤(BROMPTON)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16인치 자전거 바퀴 하나의 크기로 폴딩되는 이 자전거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체험해본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마운틴 하드웨어의 모델로 섭외한 오진곤이 촬영 현장에 브롬톤을 가지고 왔고 실제로 보니 상상보다 몇 배는 더 멋있었다. 궁금증이 생겨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찾아보니 그야말로 클래식한 감수성을 집약해놓은 듯한 사진들이 차곡하다. 브롬톤은 런던에서 시티 라이프를 위해 개발된
자전거지만 단순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이 산, 바다, 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자전거부터 의류까지 오버스펙으로 준비해 여행하는 모습보다 보기 좋다. 이런 것이 현대의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이다. 브롬톤 자전거 여행으로 유명한 블로거인 ‘뭉크’의 포스팅을 읽고 그에게 전화까지 걸어 몇 곳을 여행지로 추천받았다.
후보지 중에 바이챈스가 선택한 곳은 충주 자전거길. 계획은 충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해 탄금대 자전거길을 따라 약 22km를 라이딩한 뒤 목계솔밭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 날 26km를 더 달려 장호원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보는 것. 출발지까지는 촬영 팀을 보조하는 자동차로 자전거를 옮기지만 돌아올 때는 폴딩 자전거인 만큼 시외 버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목계솔밭 또는 목계나루로 알려진 첫날의
목적지는 너른 잔디밭과 야영 데크가 설치된 무료 캠핑장. 가까운 강가에서 낚시를 즐기기에도 좋은 캠핑 포인트다. ‘목계대교 아래가 근방에서 물고기가 가장 잘 잡히는 곳’이라고 주민들이 일러주었다.
“충주에는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는 ‘뭉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한 초록으로 가득한 강변을 따라 선명하고 또렷한 길이 나 있다. 표지판도 나무 데크도 깔끔하다. 자연과 도시를 잇는 이런 길들은 브롬톤과 잘 어울린다. 우리는 몸에 꼭 달라붙는 사이클 의류 대신 셔츠와 조끼를 입고 스페리의 보트 슈즈를 신었다. 그렇게 해도 불편하지 않은 여행. 이마와 등이 땀으로 촉촉하게 젖을 정도로 강변을 달리다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었다. 때로는 너무 힘들이지 않고도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