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7월 28, 2016
서프 포인트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작년 겨울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 본사를 방문했을 때 서가에서
1950년대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서핑과 등반 문화를 다룬 사진집.
그 시대는 미국이 냉전의 공포와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 등 문화적 아이콘을 배출하던 시기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유행한 서핑과 등반은 이념과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젊은이들의 시대적 욕구를 반영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동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뜨겁게 인기를 얻고 있는 서핑은 캘리포니아 사진집에서 볼 수 있는 그것만큼 깊은 의미로 해석되진 않는다.
누군가는 유행에 편승하는 무리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수많은 서퍼의 눈과 피부에는 진정성이 깊게 배었다. 얄팍한 통찰력으로 그들에게 상업주의를 들이미는 것은 큰 결례다.
10여 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지만 개조된 스타렉스로 서핑 포인트를 찾아 떠난 부산 소년들의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이후 이들은 안티도트(ANTIDOTE)라는 회사를 차리고 서프 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한다. 그 오래전 한적한 해변에 숍을 열고, 해외 유수의 셰이퍼를 찾아 보드 깎는 기술을 배우고, 서핑의 감수성을 담아 옷을 만들던 이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흐름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핑 또한 세계의 그것처럼 자연 발생적이고 젊은이들의 탈출구 역할을 할 만큼 매력적인 파도가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아직도 한국과 서핑을 성립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아두거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파도를 기다리고, 찾아 나서고, 쉬는 동안 해변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심 없다.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기록 경쟁을 지양하는 서핑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음악가나 미술가처럼 심미안과 순수함을 지녔다.
서프 포인트는 재화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곳이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서프 문화를 조명하는 매체들-
나 또한 조금은 유행을 좇아서 서핑을 시작했고, 그래서 바다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서핑을 하기 전에는 파도나 조류가 생기는 이유와 해변의 생김새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을 더 잘 깨우치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내가 바다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는 데만 집중했다면 너무 어려워서 금세 그만두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고 희생적인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서핑과 관련된 영상, 사진, 패션을 검색해보거나 주말 서핑을 떠나면서 소소한 과정을 즐긴다. 사무실에서 틈틈이 파도 차트를 확인하고 금요일 새벽녘 자동차에 서프보드를 얹고 동해 어딘가로 달려가는 그 모든 시간을.
바다에 도착하면 언제나 텐트부터 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편히 쉬고 싶기도 하지만 텐트 안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일 아침의 풍경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다. 경험에 따르면 서프보드를 들여놓고 자거나 웨트슈트를 갈아입어도 될 만큼 높고 너른 티피형 텐트가 적합하다. 타프만 설치한 뒤 밤에는 서프보드를 테이블 삼아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서핑을 위한 베이스캠프인 만큼 야영 장비는 간단할수록 좋다. 또 물에서 지친 허기를 채울 수 있으면서 과정과 재료는 최소화된 요리가 좋다. 나는 최근 치킨 스튜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닭과 토마토 페이스트, 각종 채소를 오랫동안 끓이기만 하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고 여럿이 배불리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이번 호 바이챈스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WSB FARM 크루에게 연락해 서프 트립 일정을 논의했다. 원래는 제주도로 향하려 했으나 날씨와 파도 차트를 충분히 고려해 동해안의 가보지 못했던 스폿을 찾아보기로 했다.
서퍼들이 애용하는 윈드 파인더(Wind Finder)로 확인한 6월 둘째 주의 파도 차트는 지속적으로 1m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고성, 양양, 강릉, 삼척, 포항으로 이어지는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촬영을 하루 앞두고 차트가 크게 바뀌면서 파도가 사그라졌다. 우리의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나는 파도가 잦아들기 직전의 모습이라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혼자서 올림푸스 터프 870 모델을 가지고 양양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서핑 사진가로 활약 중인 프라이데이 무브먼트(Friday Movement)의 강수훈에게 부탁해 몇 장의 멋진 사진을 얻었다.
바이챈스의 전속 사진가인 이성훈이 도착하고 나서 3박 4일 동안이나 고성, 양양, 강릉을 오갔지만 더 좋은 파도를 만나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서핑은 바로 그런 것. 쉽게 만날 수 없기에 그 순간이 더 즐겁고 귀한 것이다. 따라서 서프 로드 트립으로 계획했던 이번 바이챈스는 우리가 사용했던 장비들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이 서핑과 야영을 사랑한다면, 자동차를 고르고 야영 장비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