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4월 4, 2017
계산된 모험’.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디어도어 아이작 루빈(Theodore Issac Rubin)의 명언 중 하나다. 우리는 대체로 계산된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는 무엇을 먹을 것이며, 내일은 어떤 일을 할 것이고, 몇 달 뒤엔 어는 곳에서 살 것인가 하는 것 등등. 그런데 루빈 박사는 모험 역시 계산된 것이라고 했다. 낯선 곳에서 ‘안전’을 도모하려면 계획적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언가 조금 아쉽다. 아웃도어 활동가들이 겪은 온갖 불편과 위험한 상황을 ‘계획적이었다’고 평가 절하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냉정한 루빈 박사에게 아웃도어 마니아 중 한 명으로서 섭섭함을 전한다.
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만한 동지들을 만났다. 바이챈스(By Chance) 멤버들이다. 그동안 국토의 수많은 산, 바다, 강을 누비며 모험 활동을 했다. 팀 이름은 ‘같이 다니면 뜻밖의 일들이 벌어진다’는 의미와 기대를 담아 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계산된 모험과는 거리를 둔 인물들인 것이다.
첫 만남에도 경계가 아닌 흔쾌한 환영의 제스처를 보이는, 호기심 많은 그들과 함께 강원도 정선으로 향했다. 이곳에 자리한 덕산기계곡은 가리왕산과 문래산, 각희산, 중봉산 등 해발 1000m대의 산들에 둘러싸여 꽁꽁 감춰진 곳이다. 그래도 어떻게 알아내는지 매년 여름 휴가철이 되면 계곡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자동차 오프로드 마니아, MTB 동호인들에게도 덕산기계곡은 인기 코스였다. 계곡 양 끝에 자리한 덕우리와 북동리를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 계곡을 관통하는데, 지금까지도 여기는 개발의 영향을 받지 않아 골짜기가 자연 그대로 살아 있다. 사람들은 이런 오지의 야생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세간의 관심을 너무나 많이 받은 나머지 2014년 4월 덕산기 계곡의 이 구간은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갔다. 그게 이번 4월 말에 풀리는데,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고, 또 지역민들이 방문객에게 전할 당부의 말을 대신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당 관리 지역에 허가를 받고 미리 다녀왔다.
가기 전 인근에 사는 지인에게서 “그곳은 완전히 망가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실물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막 돋은 꽃망울에서는 생기가 돌고, 냇물은 맑고 깨끗하다. 밤하늘 별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휴식년제가 더 연장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직 이전만큼 회복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 건 물론이고 차를 갖고 들어와 세차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한 지역 주민의 말을 듣고 우리는 같은 ‘몰상식한 방문객’으로 몰릴까 봐 몸을 사렸다. 캠핑을 할 땐 화기 사용을 거의 하지 않고 쓰레기는 전부 되가져왔다. 어렵게 찾아온 계곡의 평화가 깨질까 싶어 다음 날 자전거를 탈 때도 조심스러웠다.
이후 우리는 계곡을 빠져나와 문치재를 넘었고 이어서 정선의 소금강을 둘러보며 내려왔다. 계곡의 아기자기함과 달리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천혜의 환경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정인 것이다. 이런 기분을 낼 수 있도록 정선의 풍경을 가꾼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덕산기 계곡은 이제 곧 누구든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게 된다. 3년 간의 휴식 기간 동안 자연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했기를 기대한다. 자연환경 어디서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훼손하지 않고, 자신의 몸처럼 돌볼 줄 아는 마음들이 생겨났으면 한다.
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바이챈스 멤버들은 ‘뜻밖의’ 일과 맞닥뜨렸다. 우리가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폭설이 내렸고 광풍과 함께 눈보라가 휘날린 정도. 다행히 다음 날 날이 따듯해 쌓였던 눈은 금방 녹았다.
바이챈스 멤버로서 함께한 첫 여행치고는 별일 아닌 것이리라.